임신 후기에 발이 붓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임신중독증입니다. 그런데 붓는 것은 만삭 임신부에게 워낙 흔한 일이라, 지금은 진단 기준에서 아예 빠져 있습니다. 정작 놓치면 위험한 신호는 따로 있고, 그것들은 부기처럼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아래는 이 병이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진단하는지,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그날 안에 병원에 연락해야 하는지, 그리고 널리 퍼진 이야기 중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다만 혈압과 검사 수치를 해석하고 분만 시점을 정하는 일은 산부인과 진료의 영역입니다. 증상이 있다면 이 글을 더 읽기 전에 병원에 연락하세요.
이름부터 짚고 갑니다
임신중독증은 오래전에 쓰던 이름입니다. 몸에 독소가 돈다고 여기던 시절의 용어(toxemia)를 그대로 옮긴 말이라, 지금 병원에서 쓰는 정식 이름은 전자간증입니다. 자간증(경련)에 앞선 단계라는 뜻입니다.
원인도 독소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임신 초기에 태반이 자궁 벽의 혈관 속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태반으로 가는 피가 부족해지고 그 결과 산모의 혈관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 나온다고 봅니다. 혈압이 오르고 콩팥에서 단백질이 새어 나가고 간과 혈소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모두 여기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병은 혈압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장기가 함께 걸리는 문제입니다.
진단은 이렇게 내립니다
기준이 생각보다 구체적입니다. 숫자를 알아 두면 진료실에서 듣는 말이 훨씬 잘 이해됩니다.
- 임신 20주 이후에 새로 생긴 고혈압이어야 합니다. 수축기 140mmHg 이상 또는 이완기 90mmHg 이상이 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두 번 확인되는 경우입니다. 한 번 높게 나왔다고 바로 진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여기에 단백뇨가 더해지면 전자간증입니다. 24시간 소변에서 단백질 300mg 이상이 기준이고, 실제로는 소변 검사지나 단백/크레아티닌 비로 먼저 걸러 냅니다.
- 단백뇨가 없어도 진단될 수 있습니다. 혈소판 감소(10만/µL 미만), 간효소 상승, 콩팥 기능 저하, 폐부종, 그리고 새로 생긴 두통이나 시야 증상 중 하나만 있어도 진단합니다. 이 항목이 들어간 뒤로 '단백뇨가 안 나왔으니 괜찮다'는 말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됐습니다.
- 혈압이 160/110mmHg 이상이면 중증으로 봅니다. 이 수치는 외래에서 기다릴 일이 아니라 바로 처치가 필요한 수준입니다.
통념 하나 — "많이 부으면 임신중독증이다"
예전에는 부기가 진단의 세 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임신부에게도 워낙 흔하게 나타나다 보니 병을 가려내는 데 쓸모가 없었고, 그래서 기준에서 빠졌습니다. 만삭에 발과 종아리가 붓는 것은 대부분 정상입니다.
다만 부기의 '모양'은 여전히 참고가 됩니다. 며칠에 걸쳐 서서히 붓는 발과, 아침에 일어났더니 얼굴과 손이 갑자기 부어 반지가 안 들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후자가 며칠 만의 급격한 체중 증가나 두통과 함께 온다면 그때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날 안에 병원에 연락해야 하는 신호
다음 진료를 기다리지 말고 연락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밤이라면 분만 병원 응급실 번호로 전화하시면 됩니다.
- 가라앉지 않는 심한 두통 — 특히 타이레놀을 먹어도 그대로인 두통입니다.
- 눈앞이 번쩍이거나 점이 떠다니고, 시야가 뿌옇거나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것
- 명치나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아픈 것 — 체한 느낌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 넘기기 쉽습니다. 간이 붓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 중요합니다.
- 임신 후기에 새로 생긴 구역질과 구토 — 초기 입덧과 달리 후기에 갑자기 시작되는 것은 다르게 봅니다.
- 숨이 차고 누우면 더 답답한 것
- 얼굴과 손이 갑자기 붓거나, 며칠 사이 체중이 크게 늘어난 것
- 소변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 집에서 잰 혈압이 140/90 이상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것. 160/110 이상이면 즉시 병원으로 가세요.
통념 둘 — "짜게 먹어서 생긴다"
소금을 줄이면 예방된다는 이야기가 오래 돌았지만, 임신 중 저염식이 전자간증이나 임신성 고혈압을 막는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진료 지침에는 예방 목적의 소금 제한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미 고혈압이 있거나 다른 이유로 식단 조절을 권고받았다면 그것은 따르셔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짜게 먹지 않았으니 안심'이라거나 '내가 짜게 먹어서 생겼다'는 자책이 둘 다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병은 식습관보다 태반이 자리 잡는 초기 과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위험이 높은 경우
해당한다고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진료 계획이 달라지기 때문에 첫 진료 때 빠뜨리지 말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 이전 임신에서 전자간증을 겪은 경우 — 가장 강한 위험 요인입니다.
- 쌍둥이 이상의 다태임신
- 임신 전부터 있던 만성 고혈압, 1형·2형 당뇨, 콩팥병
- 루푸스나 항인지질항체증후군 같은 자가면역 질환
- 첫 임신, 만 35세 이상, 임신 전 비만(체질량지수 30 이상)
-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경우, 어머니나 자매가 전자간증을 겪은 가족력
- 이전 출산과 10년 이상 터울이 벌어진 경우
예방으로 쓰이는 것 — 저용량 아스피린
지금까지 예방 효과가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된 방법입니다. 위험이 높은 임신부에게 저용량 아스피린을 하루 75~150mg 쓰고, 임신 12~28주 사이에 시작하되 가능하면 16주 이전에 시작하는 방식이 널리 권고됩니다. 국내에서는 100mg 제형을 주로 씁니다.
시작 시점이 중요하다는 자료도 쌓이고 있습니다. 국내 한 병원의 분석에서는 12주 이전에 시작한 쪽이 12~20주에 시작한 쪽보다 임신성 고혈압 발생이 뚜렷하게 적었습니다. 태반이 자리 잡는 시기에 맞춰 시작해야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진단되면 어떻게 되나요
약으로 혈압을 낮출 수는 있지만, 병 자체를 끝내는 방법은 아기와 태반을 낳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치료 계획은 사실상 '언제 분만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됩니다.
- 37주 이후에 진단되면 대개 분만을 진행합니다. 더 기다려서 얻을 것보다 위험이 큽니다.
- 중증 소견이 있으면 34주 무렵부터 분만을 고려합니다. 그전이라면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보며 시간을 버는 쪽을 택하기도 합니다.
- 34주 이전에 분만이 예상되면 태아 폐 성숙을 돕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미리 놓습니다.
- 경련(자간증)을 막기 위해 황산마그네슘을 정맥으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화끈거리고 나른해지는 느낌이 흔한 부작용입니다.
- 혈압이 많이 높으면 임신 중에도 쓸 수 있는 혈압약(라베탈롤, 니페디핀 등)을 씁니다.
- 입원하면 혈압과 소변, 혈액검사를 반복하고 태아 심박과 초음파로 아기 상태를 함께 봅니다.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태가 안정적이면 유도분만으로 자연분만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분만 후에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입니다. 전자간증은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개 분만 48시간 이후부터 6주 사이이고, 그중에서도 첫 일주일에 가장 많습니다. 임신 중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산모에게도 생깁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조리원이나 집에서 밤잠을 못 자며 지내는 때라, 두통과 시야 증상을 피곤해서 그렇다고 넘기기 쉽습니다. 산후에 심한 두통이 이어지거나 눈앞이 번쩍이고 명치가 아프면, 산후조리 문제로 넘기지 말고 분만한 병원에 연락하세요. 퇴원할 때 혈압계를 하나 마련해 두면 판단이 훨씬 쉬워집니다.
매번 혈압을 재고 소변을 받는 이유
산전 진료에 갈 때마다 체중을 재고 혈압을 재고 소변컵을 받는 것은 사실상 이 병을 찾기 위한 절차입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수치가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진료를 거르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확실한 대비입니다.
- 집에서 혈압을 잰다면 팔뚝에 감는 방식의 혈압계를 쓰세요. 손목용은 자세에 따라 값이 크게 흔들립니다.
- 5분쯤 앉아 쉬고, 등을 기대고 발을 바닥에 붙인 채 팔을 심장 높이에 두고 잽니다. 커피나 계단 오르기 직후는 피하세요.
- 1~2분 간격으로 두 번 재서 기록해 두면 진료 때 그대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 무럭달력의 산전검사 일정에서 각 주차에 어떤 검사가 있는지 함께 보시면, 후기 진료가 왜 2주에 한 번, 나중에는 매주로 촘촘해지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