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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약, 끊어야 할 것과 계속 먹어야 할 것

"임신하면 약은 무조건 안 된다"는 말과 "이 약은 B등급이라 안전하다"는 말은 둘 다 지금은 맞지 않습니다. FDA 임부 등급이 2015년에 폐지된 사정, 임신인 줄 모르고 먹었을 때 따져야 할 시기, 해열제와 감기약과 항생제를 실제로 어떻게 나눠 보는지, 그리고 국내에서 성분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임신을 확인한 날 가장 많이 하는 검색 가운데 하나가 "임신 중 약"입니다. 이미 먹어 버린 약이 있어서일 때도 있고, 원래 먹던 약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찾아보면 답이 대체로 두 갈래로 갈립니다. 하나는 "임신 중에는 약을 먹으면 안 된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약은 B등급이라 괜찮다"입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지금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아래에서는 그 두 가지가 왜 틀렸는지, 임신인 줄 모르고 약을 먹었을 때 무엇을 따지는지, 흔한 약들을 실제로 어떻게 나눠 보는지, 그리고 성분 하나를 국내에서 직접 확인하려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특정 약을 먹어도 된다 안 된다고 판정하는 글이 아니라, 그 판단을 담당 의사·약사와 나눌 때 쓸 틀을 만드는 글입니다.

통념 하나 — "임신 중에는 약을 아예 먹으면 안 된다"

안 먹을 수 있으면 안 먹는 편이 낫다는 뜻이라면 맞습니다. 문제는 이 말이 종종 "그러니 원래 먹던 약도 끊는다"로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천식, 갑상선 기능 이상, 뇌전증, 우울증, 고혈압처럼 약으로 조절하던 병을 임신했다는 이유로 혼자 끊으면, 약의 위험을 피하는 대신 병이 나빠지는 위험을 그대로 받게 됩니다. 조절되지 않는 천식 발작은 태아에게 가는 산소를 줄이고, 갑상선 기능저하를 방치하면 태아의 신경 발달에 영향이 갑니다. 약을 바꾸거나 용량을 조정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은 끊는 쪽과 유지하는 쪽을 나란히 놓고 하는 것이지 "임신했으니까"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신 중에 열이 나면 내리는 쪽이 권고됩니다. 해열제를 참고 버티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통념 둘 — "이 약은 B등급이라 안전해요"

미국 FDA가 쓰던 임부 등급 A·B·C·D·X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없는 분류입니다.

FDA는 2014년 12월에 임신·수유부 표시 규칙(PLLR)을 공표하고 2015년 6월 30일부터 시행하면서 이 알파벳 등급을 없앴습니다. 등급 대신 사람에게서 나온 자료와 동물에게서 나온 자료를 문장으로 요약해 적고, 임신·수유·가임기 남녀 세 항목으로 나누어 쓰도록 바뀌었습니다. 2001년 6월 이후 허가된 약은 단계적으로 새 형식으로 옮겼고, 그보다 오래된 약도 2018년 6월까지 라벨에서 등급 표기를 지우게 했습니다.

없앤 이유가 중요합니다. 한 글자가 위험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B와 C의 차이는 위험의 등급 차이라기보다 근거가 사람에게서 나왔는지 동물에게서 나왔는지의 차이에 가까웠고, X는 위험이 가장 크다는 뜻이 아니라 "이 약으로 얻을 이익이 없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B등급이라 안전하다"는 문장은 등급이 살아 있던 시절에도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애초에 이 등급을 공식 기준으로 삼은 적이 없습니다. 대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부금기 성분을 따로 지정하고 두 등급으로 나눕니다.

  • 1등급 — 사람에서 태아에 대한 위해성이 명확하고, 약을 쓰는 위험이 치료로 얻는 이익을 넘어서는 경우입니다. 원칙적으로 사용 금지입니다.
  • 2등급 — 사람에서 태아에 대한 위해성이 나타날 수 있는 경우로, 역시 원칙적으로는 사용 금지입니다. 다만 치료의 이익이 잠재적 위험을 넘어서거나 분명한 임상적 사유가 있으면 의사 판단으로 예외적으로 처방할 수 있습니다.

이 정보는 처방과 조제 단계에서 경고로 뜨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의료진 화면에 나타납니다. 다만 시스템이 알아서 다 걸러 준다고 믿지는 마세요. 임신 사실을 먼저 말하는 것이 그 시스템보다 앞에 있습니다. 다른 과 진료, 치과, 약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신인 줄 모르고 먹었어요

상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여기서는 "무슨 약이었나"만큼 "언제였나"가 중요합니다.

  • 마지막 생리 시작일 기준으로 임신 4주 이전, 그러니까 수정 후 2주가 되기 전은 이른바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ne) 시기로 봅니다. 손상이 크면 착상이 되지 않거나 유산으로 이어지고, 그 정도가 아니면 세포가 회복되어 기형으로 남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생리가 늦어져 임신을 알기 전에 먹은 약의 상당수가 이 구간에 들어갑니다.
  • 임신 5주에서 10주 사이, 수정 후로 치면 3주에서 8주 사이가 기관형성기입니다. 심장과 신경관, 팔다리 같은 구조가 만들어지는 때라 구조적 기형에는 이 시기가 가장 민감합니다.
  • 그 이후로는 구조보다 성장과 기능 쪽입니다. 임신 후반에 제한이 걸리는 약들이 기형이 아니라 태아 신장이나 동맥관 같은 다른 이유로 걸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만 이 구분은 "4주 전이면 무조건 괜찮다"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몸에 오래 남는 약이나 임신 전부터 중단이 필요한 약에는 이 셈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먹은 약의 제품명과 성분, 용량, 먹은 날짜와 횟수를 적어 두고 첫 진료 때 그대로 보여 주세요. 약 봉투나 포장을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해열진통제 — 아세트아미노펜을 둘러싼 소란

임신 중 통증과 열에 1차로 쓰이는 것은 아세트아미노펜입니다. 오래 쓰였고 자료가 가장 많이 쌓인 성분입니다.

그런데 2025년 9월 미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ADHD의 연관을 이유로 제품 라벨을 바꾸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국내에도 불안이 퍼졌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연관을 보고한 관찰연구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그러나 2024년 4월 JAMA에 실린 스웨덴 연구는 1995년 7월부터 2019년 12월 사이에 태어난 248만여 명을 보면서,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끼리 비교했습니다. 한 아이는 노출되고 다른 아이는 노출되지 않은 경우를 견주면 유전과 가정 환경의 영향이 상쇄되는데, 이 비교에서는 자폐·ADHD·지적장애와의 연관이 사라졌습니다. 앞선 연구들이 본 것이 약이 아니라 가족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 미국산부인과학회와 미국소아과학회는 발표 직후 반대 입장을 냈고, 유럽의약품청을 비롯한 다른 규제기관과 학회들도 기존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관련성이 보고된 것과 원인으로 확인된 것은 다르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래서 실무적인 결론은 소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쓰되 최소 용량으로 가장 짧게 쓰고, 며칠씩 습관적으로 삼키고 있다면 그 통증의 원인을 진료로 확인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는 논란의 양쪽이 대체로 동의합니다.

이부프로펜과 아스피린은 왜 다르게 취급되나요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같은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NSAID)는 임신 후반에 제한이 걸립니다.

미국 FDA는 2020년 10월 15일, 임신 20주 무렵 이후의 NSAID 사용이 드물지만 심각한 태아 신장 문제를 일으켜 양수과소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주쯤부터 양수의 대부분을 태아의 소변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해서 20주에서 30주 사이에 쓸 때도 최소 유효 용량으로 가장 짧게 쓰라고 했고, 30주 이후는 태아의 동맥관이 일찍 닫힐 위험이 더해져 그 전부터 이미 권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임신중독증 예방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처방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같은 소염진통제인데 왜 다른가 싶을 수 있습니다. FDA도 위 권고가 임신 중 특정 상황에 처방되는 저용량 아스피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따로 밝혀 두었습니다. 용량이 다르고, 위험 요인이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확인된 쓰임이며, 무엇보다 의료진이 정해서 주는 것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약국에서 사서 스스로 시작할 일은 아닙니다.

감기약·항생제·위장약

낱개 성분으로 보면 대응이 달라집니다. 여러 성분을 섞어 놓은 종합감기약이 특히 그렇습니다. 임신 중에는 "감기약"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들었나"로 보는 편이 낫습니다.

  • 코막힘약 슈도에페드린 — 미국산부인과학회는 임신 첫 3개월 동안은 쓰지 않기를 권합니다. 관찰연구에서 복벽결손 같은 드문 기형과의 연관이 보고됐기 때문입니다. 위험의 크기 자체는 작다고 보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 증상이라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쪽입니다. 코막힘에는 생리식염수 세척과 가습이 먼저입니다.
  • 항생제 — 세균 감염은 치료하지 않는 쪽이 위험합니다. 특히 임신 중 방광염과 증상 없는 세균뇨는 신우신염과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치료 대상입니다. 페니실린계와 세팔로스포린계처럼 임신 중에 오래 쓰여 온 계열이 있고, 테트라사이클린계(태아의 치아 착색)나 퀴놀론계처럼 대안이 있으면 피하는 계열이 있습니다. 무엇을 쓸지는 감염의 종류에 따라 정해집니다.
  • 위장약 — 미소프로스톨이 든 약은 자궁을 수축시켜 임부에게 금기입니다. 위장 보호 목적으로 소염진통제와 함께 묶여 있는 경우가 있어, 임신 전부터 먹던 약이라면 성분을 한 번 확인하세요.
  • 변비약과 제산제 — 임신 중 흔한 증상이고 쓸 수 있는 것이 있지만, 자극성 성분인지 아닌지에 따라 권하는 것이 다릅니다. 약국에서 임신 중임을 밝히고 고르세요.

영양제와 한약도 약입니다

처방약만 조심하고 나머지는 마음을 놓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여기가 관리가 잘 안 되는 영역입니다.

  • 비타민 A — 부족이 아니라 과량이 문제가 됩니다.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에서 임신부의 비타민 A 상한섭취량은 하루 3,000㎍ RAE입니다. 종합비타민과 따로 산 제품을 겹쳐 먹으면 넘길 수 있습니다.
  • 여드름약 이소트레티노인 — 비타민 A 유도체이고 기형 유발이 분명해 임신 중 금기입니다. 복용 중이거나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임신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상의해야 합니다.
  • 한약과 건강기능식품 — "천연이라 안전하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성분표를 사진으로 찍어 두고 산부인과와 한의원 양쪽에 임신 사실을 알리세요.
  • 카페인 — 약은 아니지만 두통약이나 감기약에 들어 있는 경우가 있어, 커피와 따로 세지 말고 합산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성분 하나를 직접 확인하려면

국내에서 지금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적습니다.

  • 의약품안전나라(nedrug.mfds.go.kr) — 식약처가 운영합니다. 제품명이나 성분명으로 검색하면 허가사항 전문이 나오고, 그 안의 "임부 및 수유부에 대한 투여" 항목이 그 약에 대한 공식 문구입니다. 블로그 글이 아니라 허가된 문서를 직접 보는 방법입니다.
  • 약학정보원(health.kr) — 낱알의 모양과 식별 표시로 약을 찾을 수 있어, 이름을 모르는 알약만 남아 있을 때 씁니다.
  • 한국마더세이프 상담센터(1588-7309) — 임신부와 수유부, 임신을 계획 중인 분을 대상으로 약물 상담을 해 온 곳입니다. 평일 09시부터 17시까지 운영하고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3시 30분까지입니다. 지금은 유료 상담으로 운영되므로 비용과 방식은 신청 전에 확인하세요.
  • 담당 산부인과 — 결국 여기입니다. 위의 자료들은 질문을 정확하게 만드는 데 쓰고, 결정은 진료에서 하세요.

진료 때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 "임신 ○주입니다" 또는 "임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산부인과 말고 다른 과와 치과, 약국에서도 먼저 말하세요.
  • "지금 먹고 있는 약이 이것입니다" — 제품명과 용량, 복용 기간까지. 영양제와 한약도 포함해서요.
  • "임신 전부터 먹던 이 약은 계속 먹어야 하나요, 바꿔야 하나요."
  • "임신인 줄 모르고 ○월 ○일에 이 약을 ○번 먹었습니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이 있나요."
  • "이 증상에 약을 안 쓰고 버티는 것과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마지막 질문이 이 글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 임신 중 약 문제는 "이 약이 안전한가"가 아니라 "쓰는 쪽과 안 쓰는 쪽 중 어느 쪽이 나은가"로 물을 때 비로소 답이 나옵니다. 안전한 약과 위험한 약이 목록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약도 주수와 용량과 병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참고한 자료

*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글이에요. 몸 상태와 상황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으니, 판단이 필요한 일은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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